[20200514] 다가오는 말들

2020. 5. 14. 17:26Collecting Ordinary Days /읽은 책

은유, 『다가오는 말들』, 어크로스, 2019.

Zoom 화상 통화로 책읽기 모임을 다시 하고 있다.  비-여성, 비-양육자이자 20대 남성으로서 이 책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녹여내야 할지 난감해서 페미니즘과 관련된 부분은 읽다 낯이 뜨거워져 휙휙 넘겼다. 독서라기엔 부끄럽다. 그래도 완독했고, 좋았던 구절이 많아서 아래에 공유해본다. 개인적인 감상은, 이 책 속에 소개된 몇몇 다른 책들이 읽고 싶어졌다. 소제목 별로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시도했던 부분도 잠깐 있지만 하다 몇 개 하다 금방 관뒀다. 부끄럽지만 여기 기록해둔다.

- 어정쩡한 게 좋아 '글쓰기 강좌에 나온 한 학생처럼 나도 어정쩡하다. 사는 게 어정쩡함. 예전에, 지금보다 더 어렸던 20대 초반에 무언가를 해나가던 친구를 보고 마냥 부러워하던 때가 있었다. 뭔가 확실한 걸 해나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끊임없이 타인과 나를 비교하게 된다. 작가는 “확실함으로 자기 안에 갇히고 타인을 억압”하게 된다고 하는데, 그래도 일단 다른 사람에게 나에 대해 설명할 때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사람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마치 발가벗겨지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하찮은 만남들에 대한 예의 '무언가를 규정한다는 것은 대개 본질을 볼 수 있게 하는 좋은 일이지만,  반면 누군가와 누군가, 어디와 어디 사이의 경계를 짓는 것이고 선을 긋는 것이므로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배움. 그리고 세상은 생각보다 많이 좁아서 리셋할 수 있다면, 혹은 2회차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까 다만 순간에 충실하자고 생각.'

- 그날의 눈은 나를 멈춰세웠다 '매달 얼마간의 돈이 따박따박 들어온다는 것의 무서움을 공익근무를 하면서 느끼고 있다. 알바로 벌 수 있는 돈보다는 적지만, 절대 70만원은 적은 돈이 아니니까. 신용카드도 생겨서, 소득에 맞게 소비하는 중. 하지만 이 큰 돈에 메이는 것도 좋지만 ‘소모됨의 불행’은 나에게도 크다. 관료적 언어에 길들여지고, 형체 없는 것들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것은 나에게도 동일하게 그렇다. 특히나 코로나가 우리 곁에 있는 동안에는 더. 작가는 아감벤의 말을 인용하면서 “무언가를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의 저항”이라는,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하지 않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보면서 아까 읽은 <사진의 이해>에 나오는 소위 ‘최소한의 메시지 (나는 이것을 보는 행위가 기록으로 남길 만한 가치가 있다고 결정했다)’와 어딘가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사진 찍는 행위도 글 쓰는 것과 매우 다르지만, 한편 또 닮은 구석이 있어서 무엇을 보여주지 않는가(프레이밍)가 굉장히 중요하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배운 것 중에 ‘선택과 집중’이라는 단어만큼 남는 것이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다가 내가 정작 하고싶은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 고양이 키우기에서 고양이 되기로 '문득 예전에 읽었던 <철학자와 늑대> 라는 책이 생각났다. 괜찮은 인사이트를 많이 얻었었는데. 고양이 입양 불가 의견이 사진 한 장으로 바뀌는 것에서 이미지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아래는 책의 직접 인용. (문제가 되면 바로 내리겠습니다.)  

- p87. "내게 사랑은 나 아닌 것에 '빠져듦' 그리고 '달라짐'이다. 우연한 계기로 엮여 서로의 세계를 흡수하면서 안 하던 짓을 하거나 하던 짓을 안 하게 되는 일. (중략) 이전과 다른 삶으로 넘어가는 계기적 사건이 사랑 같다.

- p100. "인간 사회는 민폐 사슬이다. 인간은 나약하기에 사회성을 갖는다. 살자면 기대지 않을 수도 기댐을 안 받을 수도 없다."

- p109. "그 고통을 알아보는 능력이 부족하면 나쁜 어른으로 오래 늙는다. 살면서 제대로 배운 적 없지만 살면서 너무도 필요한 일이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기'라는 걸 절감하던 나날에, 참고서 같은 책에 내게로 왔다."

- p126 "한 중년 남성은 사회생활의 경쟁 시스템에선 하소연이 곧 약점이 되어 불리하니까 숨긴다고 했다. 여자들의 고민 공유, 즉 '수다'는 약자들의 연대라고 나는 말했다."

- p144-145. "해법이 없진 않다. 질문에 엉킨 쟁점을 풀어주면 된다. '작가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글로써 세상에 전하고픈 메시지가 무엇인지, 몸에 맞는 장르가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한 달에 꼭 필요한 생활비가 얼마인지'. (중략) '쓰고 싶으면 빨리 쓰세요. 작가는 쓰는 사람이지 쓰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 p155 "뮤지션의 사회적 구실을 생각한다. 학생은 공부만 하라는 말처럼 뮤지션은 음악만 하라는 요구는 꽤나 정치적이다. 예술과 정치, 아이와 어른, 공과 사, 무대와 일상 등을 나누는 분리 기획은 권력자에게 유리하고 약자들이 고립된다는 면에서 위험하다. 직업-나이-성별에 무관하게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목소리를 낸다면 세상이 좀 더 좋아지리라는 믿음이 내겐 있다."

- p215. "아프거나 아팠을 얼굴들이 떠올랐다. (중략) "질병이 없는 인생은 불완전할 뿐 아니라 불가능하다"(202쪽, 아서 프랭크, 『아픈 몸을 살다』, 봄날의책, 2017.)고 하니 감내할 건 감내하고 싸울 건 싸우면서 몸의 일기를 기록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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